'25살' 내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52살' 내 아버지의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몸은 하나이지만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의 역할 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역할 중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고, 어느 것 하나 마다하는 일이 없다. 하지만 그 중 하나만이라도 놓친다면 그 사람은 세상으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아니, 손가락질만 받으면 다행이다. 어떤 이들은 꼰대라고, 어떤 이들은 능력 없는 가장이라고, 어떤 이들은 늙어서 주책이라며 그를 몰아세운다. 그는 그런 손가락질로 부터 도망친다. 그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리고 가는 곳은 자신에 자동차뿐이다. 그 곳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 곳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그 곳에서 그리고 잠을 청한다. 심지어 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시동을 걸어 세상으로 나간다. 그들이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오직 자동차뿐이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며 생각에 잠기고 싶어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은 그에 깊은 속사정까지 이해해주지 않는다. 술집에 가서 혼자 술을 마실 수도 없다.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술집은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곳이다. 혼자 비틀거리며 한강다리를 건널 수도 없다. 누군가 경찰서에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과 단절된 곳, 하지만 웬만한 것들은 할 수 있는 곳에서 밖에 있을 수 없다.
나의 아버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는 강원도 어느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나의 할아버지 그러니깐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꽤 땅을 많이 가지고 계신 부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부는 형제가 많은 아버지에게 까지 내려오지 못하였고, 혼자 힘으로 서울에 올라와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80년대 초, 중반 누구에게나 그랬듯이 먹고 살기 위해 그는 모든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내가 태어났고 이제는 부양해야 할 가족이 한명 더 늘었기에 그는 남아있던 모든 힘을 또 쏟아 부어야 했다. 그렇게 10여년이 흘렀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았고 재벌은 아니어도, 남부럽지 않을 만큼은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IMF라는 폭풍을 비켜갈 수 없었다. 자신이 망쳐놓은 마냥 죄책감에 빠져 살아야 했다. 한순간 모든 것을 잃어야 했다. 친척들로 부터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고 어느 누구하나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힘없이 주저 앉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강산도 변한다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찾은 듯 보인다. 마음속에 응어리져있던 피해도 상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치유가 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그는 가족으로 부터 사회로 부터 다시금 일어나라고 압박을 받는다. 힘들다. 모든 것이 힘들다. 아직 그는 일어설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주위에 모든 것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독이지 못하고 오히려 역정을 낸다. 10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하지 않냐 며 그를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무능력한 사람으로 몰고 간다. 그렇다고 그는 거칠게 반항하지도 못한다. 이미 육체와 정신은 망가질 때로 망가졌고 잘난 것 하나 없기에 반박할 수도 없다. 그는 또 그렇게 주저앉는다. 10년 전에는 사회가 그를 버렸다면 이제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들이 그를 버리려 한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유교사상으로 현대 여성들이 받는 피해는 어마 어마 하다고 한다. 남자들은 절대 이해해 줄 수 없으며 알지도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뿌리 깊게 박혀있는 유교사상 때문에 오히려 힘든 사람은 가장 이자 아버지인 이 시대의 중년 남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는 서서히 남, 여 평등의 길을 가고 있으며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남, 여가 평등하다고 외치고 유교사상 따위는 버려야 한다는 여성들의 머릿속에 도 그래도 가정을 지키는 사람은 남자라고, 중심은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와 가족 사이에서의 괴리감은 그들을 더욱 더 힘들게 한다.
사랑한다고 힘내시라고 끝까지 믿겠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이 한국 사회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다림의 미학을 인내심의 한계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빨리 일어설 수 없다면 평생 주저앉아야 한다. 권투 선수가 다운을 당해도 10초간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 사회의 가장들에게는 1초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을 그냥 사랑하자. 기다리겠다고 말하지도 말자. 다시 일어서라고 이야기 하지도 말자. 그들은 혼자 상처를 치유하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 있을 일에서의 피해를 줄이려 노력할 것이고 가족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살아 갈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다. 단지 지금은 숨기고 있는 것뿐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꿈을 키우고 능력을 키웠던 시대와 주저앉고 일어나려고 하는 시대가 달라서 조금 헤매고 있는 것뿐이다. 그들이 이 시대에 적응을 하면 그 누구보다 더 한 능력을 발휘 할 것이다. 난 그렇게 믿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냥 사랑하자